자살률 1위, 합계출산율은 대한민국의 0.78명
"살고 싶지 않은 나라에 내 자식이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인다.
앞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불행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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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가지 해결책으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어떻게 이렇게 발전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1. 역대 인류 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사는 우리들
35만년 전 현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로 인류는 현세대보다 풍요로웠던 삶을 살았던 경우는 없다.
수렵 채집을 해야 했고, 맹수들과 싸워야 했으며,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야했고, 수많은 균과 알 수도 없는 병으로 죽어갔다. 심지어 다른 인류를 만나서 전쟁하고 서로를 죽이는 참극 조차 흔했을 것이다. 농경 사회가 오고 나서도, 여전히 가난했고, 기근이나 병충해가 있을 때면 한겨울 내내 배 곯아가며 지냈다. 산업 혁명으로 도시가 생기고 공장이 늘어나면서 자본가들은 부유해졌지만 노동자들은 가난하고, 권리도 보장되지 않아 말 그대로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 현대 대한민국은 자유롭고, 마트에 음식이 넘치고, 치안이 좋고, 따뜻한 옷과 집이 있으며, 원하면 언제든 병원을 갈 수 있다.
특히, 의학의 역사를 보면 더욱 현 시대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인간의 3대 통증 중 하나인 치통의 가장 흔한 원인인 충치 치료의 경우 기원전 3000년경(5000년전)에는 이가 썩으면 귀신이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귀신이 싫어하는 대변을 바르거나 망치로 이를 부수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다. 이가 상하면 생기는 구멍을 벌레가 먹었다고 해서 생니를 뽑아 버렸다고 한다. 제대로된 치료는 1700년대가 되어서야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한 흔히 말하는 임플란트도 1980년에서야 시작되었다.
골절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많은 전쟁, 노동으로 골절 및 부상을 당하더라도 초기에는 그냥 뒀고 골수염, 패혈증등으로 죽고, 살더라도 평생 불편함을 가지고 살아갔다. 이후 부목을 대는 방식으로 치료 했지만 현재 뼈 상태를 알 수 없으니 이상하게 붙는 경우가 많아 평생을 불편함에 살아가던 사람들도 많았다. X-ray의 발전과 함께 19세기에 되서야 현재같은 치료가 가능해진다.
산업혁명과 도시사회를 살면서 결핵, 폐렴, 독감, 페스트 등의 감염병도 유행했으나 192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페니실린(최초의 항생제) 하나 개발이 되었다. 현재는 수많은 항생제, 항바이러스제들이 있어 큰 합병증 없이 감염을 이겨낼 수 있다.
젊은 나이에 합병증으로 사망하던 당뇨에서 가장 중요한 인슐린을 발견한게 1920년, 흔히 말하는 고혈압이 나쁘다라고 알게 된 것도 1960년대, 인류 역사 내내 사용하던 납이 좋지 않다고 해서 금지된 것도 1990년대이다.
우리는 정말 복받은 세대이다. 최근 항암 치료제들의 개발로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고, 체계적인 의료전달시스템 확립 등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값싸게 건강하게, 응급 시술/수술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감사하다. 이런 우리가 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인류의 부러운 눈빛이 느껴지지 않는가?
2. 왜 자살하지 않는가?
앞선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을 알고나면 비교적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앞선 사람들이 안타깝게 죽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이기 때문에 나의 불행한 마음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꼰대같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이 말은 알베르 카뮈가 1942년에 쓴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라는 책의 첫 문장이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가 말하고 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삶의 의미를 말해주지 않는 세계에 인간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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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부유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그가 돈을 다 잃고 늙어 병들었을 때 조차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것, 이것이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이 되는 것과 같다. 어차피 끝날 인생 죽지않고 살아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반항은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는 것이다.
합리성을 뛰어넘는 결심. 유한하기에 오히려 한정판 같은 우리의 인생을 가치있는 일에 쓰자
3. 우리가 중요시 하는 가치, 대한민국 국민이 불행한 이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주변 국가들과 달리 물질적 풍요를 삶의 최대 가치로 꼽는다는 설문조사를 기사를 통해 보았을 것이다.
1) 비교될 수 밖에 없고 순위가 정해지는 물질적 풍요, 유한할 수 밖에 없는 건강을 최우선 가치에 둠
가족보다 자신의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중시하는 세태, 이런 사회에서 1위(물질적 풍요)가 실패로 돌아갔다 판단했을 때 뒤돌아 보면 나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가족들의 실망과 질타까지 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
유한한 것을 삶의 의미로 삼을 때 사람은 우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2) 자기 직업에 대한 가치관과 보람을 느끼지 못함
위 표에서 보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가치를 높게 두지 않는다.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소명이자 사회에 기여이다. 이런 기여에 대해 사회는 존중해주어야 역할 분담이 원할하게 이루어 지며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일본을 보아도 장인정신에 대한 존중하는 문화, 가족사업을 물려받는 문화 등이 잘 형성되어 있다. 자신의 일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느껴진다면 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보람이 없을 수 밖에 없다.
3) 가족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 사회
가족은 언제나 지친 나를 다시 뛸 수 있게 해주는 안정의 역할을 해준다. 차가운 세상에서 유일한 위로는 가정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다보면 가족은 안정과 위로가 아니라 짐이고 나에게 시드머니(seed money)를 제공해주지 못한 흙수저 부모이며 그런 동시에 나를 옥죄는 귀찮은 존재가 되게된다. 부족하고 힘든 와중에도 자식을 사랑으로 키웠던 고마운 존재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도 아이를 투자의 수단으로 생각하다보니 돈들인만큼 결과가 있어야된다고 생각하고, 의사니 판검사니 하는 부모의 기대로 자녀를 힘들게 하니 아이들도 버거워 지쳐가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으로 키운 자녀가 과연 늙은 부모를 모셔야할 존재로 볼까 아니면 경제적 부담으로 볼까?
4) 우리 나라는 왜 이런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는가?
다같이 한가지 가치를 추구하며 발전해왔고, 이것들이 무너졌을때 유지할 삶의 철학이 없다.
우리 앞선 세대는 고도성장기를 통과하며 나름 노력하면 부를 갖출 수 있는 세대였고 시작점이 비슷했기에 비슷한 가치를 모두가 같이 추구했다. 그런 환경에서 다음 세대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된다" " 판검사, 공무원 안정적인 일해라"
우리 앞 세대는 시지프스의 첫 바위를 올리던 세대이고, 올려둔 바위가 굴러떨어질 것을 모르고 우리세대에게 바톤터치를 한 셈이다. 하지만 현재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속도와 비슷해졌고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다. 눈앞에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보며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은 이미 시지프스의 바위를 몇번이고 올리고 굴러떨어짐을 목격했다. 서양의 정치경제제도 및 자유에 대한 가치관은 1600~1800년 쯤 부터 시민혁명을 거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장단점들과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respect)하는 문화와, 가족 중심적인 가치를 정착해 왔다.
우리사회는 겨우 1960년부터 고작 6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발전해 온 나라이기에 세대를 거쳐 전수되어온 삶의 가치와 철학이 없다. 역사가 짧으니 부족한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의 더뎌짐,역사가 짧은 문제 뿐만 아니라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시작점이 비슷했던 사람들 중에서 정도(正道)를 걸어가며 노력했던 사람보다 정책의 변동, 부동산값, 사기 및 탈법 같은 요인들로 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버렸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서로 비교하는 한국적 정서와 SNS의 발달이 융합하여 노력보다 결과, 성공에 대한 존경보다는 불신과 의심을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진 것이다.
4. 결론
앞선 세대가 걸어온 발자취를 그대로 가는 것은 왼발의 발자취를 오른발로 따라가려하는 것과 같다.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우리 세대부터라도 올바른 삶의 가치를 추구해보자. 세상은 유한하며, 부와 건강같은 가치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인간을 서로 사랑하고 믿음을 가지고 삶을 추구해야한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치를 깨는 사기 및 범법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처벌을, 사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 먼저 베푸는 사랑을 하자. 이것이 넘어지기 일보직전인 대한민국의 휘청거림의 균형을 잡는 무게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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